2016ed, 2017ing

요즘 SNS를 보면 올 한해를 회고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본인의 성장 혹은 아쉬움에 따른 다짐, 좋았던 일, 슬펐던 일등을 본인의 공간에 써 놓았다. 예전에는 본인을 돌아보는 이런 글은 일기장에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1년을 압축해 놓은 글을 읽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스킵했었는데, 경험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 타인에게 생각보다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나 하루하루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발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개발자"로서 다른 사람의 경험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미래의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인사이트의 파편이 되기 위해, 또한 이것저것 떠오른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내가 보낸 2016년의 생각들을(어쩌면 2016년 까지를) 짧게 회고해본다. goodbye

My previous self

2학년 까지만 해도 열심히 3D를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하고 있었다기보다 그냥 만들고 있던게 맞는것 같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속의 처음은 고등학교때 컴퓨터학원에서 3D툴로 이것저것 만들고 렌더러의 설정값을 외워서 렌더링을 돌렸던 것이다. 내가만든 실제같은 이미지가 컴퓨터에 뜨는게 좋았다. 아티스트가 된 것 같았고 스스로가 뭔가 하고있는것만 같았다.

대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 마침 3D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소학회가 있었고 인연이 되어 좋은 사람들과 프로젝트도 같이했다. 그리고 2학년 때는 내 진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이 분야를 하고싶은 건지에 대해 고민했고 나는 약간 불안했다. 이게 정말 재밌는건지, 아니면 있어보인다는게 재밌는건지 헷갈렸다. 그런 상태로 더 미룰 수 없었던 입대를 했다.

군대에서 2년간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전역할 때쯤 결국 내린 결론은 내가 나를 속이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나를 가두고 있었다. 몇년이나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몇년이나 해왔으니까 나는 이 분야와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제를 풀어가는 걸 좋아하고 탐구하는 걸 좋아하고, 생각하는걸 좋아하는 전형적인 공돌이 성향이다. 예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와 맞지 않았다. 솔직히 그때도 약간은 알고 있었다. 외면했던것 같다. 몇년이나 해왔기 때문에, 그걸 포기할 수 없어서.

그리고 3학년 때 지인을 통해서 우연한 기회로 프로그래밍을 접했다. 군대에서 잃었던 학습에 대한 감을 되살리면서 학교생활을 했다. 이 때도 가장 고민했던건 프로그래밍은 정말 나와 맞는가? 였다. 이렇게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상태로 2016년을 맞이했다.

휴학할 때 주변사람들은 나에게 어디든 회사를 다니라고 권유했다. 일단 해보라는 것이었다. 수요가 워낙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회사를 들어갈 수는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준비를 하다가 봤는데 나에게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했지만 너무나도 아무것도 없었다. 내 스스로를 개발자라고 소개할 수가 없었다. 개발보다 3D 애니메이션을 더 잘만드는게 개발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그래도 부족했던 자존감은 특히 바닥을 쳤다. 결국 이력서는 내지않았다. 그렇게 나의 2016년 초반은 심리적으로 방황했다.

With others

그래도 올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중 하나는 많은 컨퍼런스들에도 다녀오고 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에도 참여한것이다. 이 직군 특성상 트렌드를 읽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다른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듣는것은 더 중요하다. 그 두가지를 무료로(혹은 저렴하게) 얻어 갈 수 있는 것이 컨퍼런스였다. 하지만 최대이득은 티셔츠

shirt

신기술은 필요에 의해 생겨나는것 같다. 현재의 환경에 없는, 혹은 아쉬운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트레이드 오프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잃는 것보다 얻는게 더 크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어떤 기술이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분별하게 휩쓸리지말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를 필요가있다는걸 느꼈다.

Fitness

나의 2016년은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친구랑 같이 헬스를 끊었다. 현재는 어린나이라 건강했지만 오래앉아있는 것이 부담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뤄왔는데, 다른게 손에 잡히지 않으니 이 기회에 운동이나 해보자 하고 시작했다.

자존감의 부재는 특히 아침에 일어날 때 많이 느껴졌다. 내가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때마다 운동을 했다. 그러다보니 하루의 시작은 운동이었다. 운동할 때는 다른 생각이 안들고 집중할 수 있다. 스스로가 건강해지는게 느껴졌다. 몇달쯤 지나니 겉으로도 몸이 바뀌는게 보였다. 그러면서 자존감도 조금씩 회복됐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라는걸 느꼈다. 1년간의 휴학이 끝나갈 무렵인 지금은 곧 운동러 만 1년차가 된다. 꽤나 열심히 한것같다. 이제는 하지않으면 불편한, 그런 습관이 됐다.

body-fat

체지방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근육량은 생각보다 많이 늘지 않았다. 최근에 운동방법을 바꿨는데, 17년에는 근육량을 증가시키는 방향을 생각해봐야겠다. 나태하지않게, 하지만 과하지도 않게, 생활의 일부로 계속해서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Rest or Best

결국 표면적으로 2016년에는 한게 없다. 커리어를 쌓은것도 아니고 꾸준히 돈을 벌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1년동안 그냥 쉬었던 것일 수도 있다.

휴학하기전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회사를 억지로라도 다녔다면 아마도 지금보단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었을 것이고 실무경력에 한줄이라도 더 새겼을것이다.

휴학하기 전으로 시간을 돌려서 지금 내가 보낸 16년을 다시 보내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어느날은 개인프로젝트를 하다가 스스로 기술적 한계를 느낀적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오늘 한것들을 생각하다가 이제 반쯤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때 즈음 앞으로 해야할것들을 다시보니 만들어야 할게 아직 너무도 많이 남아 있었다. 마치 계단을 오르다가 힘들어서 위를 봤는데 올라온것보다 더 많은 계단이 있는, 혹은 군시절 행군하다가 남은 거리를 봤는데 아직 반도 못왔을 때, 그런것 같았다.

그런데 좌절감이 드는게 자연스러운 그 때, 그렇지않았다. 앞으로 공부하고 알아가야할것들의 높은 벽을 느꼈는데 왠지모르게 설렜다. 알아가야하는 것들에 대한 설렘이었던것 같다. 그때 내가 가질 이 직업에 대해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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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ing

내가 보낸 16년은 저랬다. 이제 보내야할 17년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 준비는 그만하고 해왔던걸 보여줘야하는 해가 될 수도 있다. 좌절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요즘 더 느끼는게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현명해지고 시나브로 뭔가 깨우치게 되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발전은 항상 생각하고 배려하고 스스로 돌아보는 사람들만이 이루는 것 같다. 나도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