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ed, 2022ing

어김없이 올해도 지나버리고 여섯 번째 회고의 시간이 돌아왔다. 2021년을 찬찬히 기억해 보니 작년에 비해 왠지 느리게 지나간 느낌이다. 기억이라는 건 루틴 한 생활들로 가득한 책에 이벤트가 책갈피처럼 꽂혀있는 형태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아마 올해 내게 책갈피가 많았던게 아닌가 싶다.

책

💼 이직

올해의 가장 큰 이벤트는 아무래도 이직일 것 같다. 작년 회고에

내일 채움이 만기 된 지금은 나의 변덕 때문인지 회사의 방향 선회 때문인지 몰라도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라고 해놓고 이직을 해버렸다.

회사가 월급을 못 줄 정도로 재정이 어렵다든지 조직 내 트러블이 있다든지 뭐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 회사는 작년 회고에 쓴 것처럼 썩 좋은 조직이었다. 매니지먼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리더와 서로를 배려하고 동기부여를 시켜주는 동료들, 시니어 테크 리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의 의지만 있으면 기술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 등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로 훌륭한 조직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그중 첫 번째는 호기심이었다. 첫 회사라 그런지 여러 가지 경험이 쌓일수록 다른 조직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계속해서 자라났다. 매출, 조직, 서비스의 규모가 좀 더 큰 회사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기술적으로는 어떤 걸 우선시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다른 환경에 잘 녹아들 수 있을지 궁금했다. 현재 내 상황이 안정적인 조직에 머무를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4년 차를 지나고 있는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서 내가 앞으로 할 많은 결정에 있어서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도 스스로에게 있었는데, 전 회사에서 평소처럼 회의를 하던 도중 어느샌가 많은 부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 조직에서 3년을 보낸 것은 (특히나 첫 회사로서는)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나는 어느 순간 아이디어를 낸 팀원에게 “이거 비슷한 거 예전에 해봤어요”라고 말하고 있었고, 조직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으며, 많은 것들에 불평했고, 코드, 환경, 생활 모든 걸 너무 안일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휴가나 포지션 변경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리프레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직을 그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 와중에 감사한 건 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구직 소식을 듣고 여러 가지로 제안을 주셨다는 점이다. 단순히 친분이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같은 팀에서 일을 해본 팀원의 제안은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내가 계속해서 같이 일하고 싶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이전에 받은 피어 리뷰도 다시 한번 살펴보고 다시 한번 개발자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라이언 어른들은 이름 아는 회사라고 좋아하신다

📈 주식

주식이라는 것이 뭔가 어려운 용어들도 많고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다가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처음 시작해 봤는데, 아직까지는 나름 재미있다. 공부를 열심히 한건 아니지만 “앞으로 더 잘 될 것 같은 회사를 밀어준다”의 느낌으로 내 자금을 묻어두다 보면 수익이 나기도 하는 것 같다. 이것저것 유튜브를 구독한 결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주가는 우상향이기 때문에 주식이 떨어지던 오르던 주식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올해 읽은 팩트풀니스 라는 책에서도 이야기하는 “언론에는 자극적인 것 위주로 비치기 마련이지만, 팩트는 세상은 항상 과거에 비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라는 내용과도 일치하는데, 아마 주식에만 적용되는 인사이트는 아닌 것 같다. 세상이 좋아지길 바라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nvidia 올해 엔비디아는 갓비디아였다

🏋️ 운동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데, 확실히 예전과 몸 상태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뭔가 몸의 활기가 다르다.

그래도 올해 운동은 꾸준히 했다. 식단은 별도로 관리하지 않았지만 되도록 건강하게 먹자 정도의 생각만 하고 있어도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겉보기로 몸이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아픈 곳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고, 멘탈을 단련하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운동은 꾸준히 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무게를 낮추되 세트 간 쉬는 시간을 줄이면서 다시 자세를 다듬는데 열중하고 있다. 내년에는 1회 성공 후 그만뒀던 머슬업을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 운동은 안다치고 오래 하는 게 잘하는 것이라는 마인드로 내년에도 꾸준히 해야겠다.

운동 기계처럼 헬스장에 가서 영혼없이 쇠질을 한다

📖 책읽기

하루에 책 20페이지 읽기 챌린지는 올해 꽤 성공적이었다. 다시 읽은 책을 포함해 총 20권 정도를 읽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시간이 없거나 해서 챌린지에 실패한 날을 정확히 센 건 아니지만 10일 미만이지 않을까 싶다. 개발과 관련 없는 책을 훨씬 많이 읽은 것 같긴 하지만 나름 만족스럽다. [총 균 쇠 - 재러드 다이아몬드]나 [코스모스 - 칼 세이건] 같이 두꺼운 책은 읽고 나면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 같은 흥미 위주의 책과 읽는데 꽤 집중력을 요하는 비문학을 번갈아가면서 읽는 게 이 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목적이 오로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재미와 의무가 반반 정도인 것 같다.

읽었던 책들이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나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내년에는 인사이트가 있는 문장들을 정리하면서 읽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그리고 가끔 돌아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책은 빌리기보다 사는게 좋은것 같다. 올해 읽은 책 올해 읽은 책들

🐶 개

어렸을 때 강아지를 기른 적이 있었는데 십 년 정도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때는 지금처럼 반려견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미디어도 없었고 워낙 어렸을 때라 강아지에게 쓸 경제력이 있던 것도 아니라는 핑계로 못해준 것만 기억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도 계속 겁이 났었는데 동생이 올해 초에 갑작스럽게 새끼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그래서 아직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일상의 많은 시간을 강아지와 함께하고 있다. 이제는 강아지가 없었을 때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생활에 한 부분이 된 것 같다.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이 강아지가 가족에게 주는 에너지가 정말 크다. 지금 더 잘해준다고 해서 예전에 기르던 강아지에게 대한 보상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산책도 꾸준히 시키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홍시 쑥쑥 자란다


2022년은 어떤 한 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올해 얻은 인사이트처럼 안 좋은 일은 좋은 일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엄격과 관용의 균형을 맞추면서 더 단단해지는 한 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