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ed-2026ing

Dec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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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회고

회고를 쓰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20대 초반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거칠고 불안한 생각들이 문장 사이마다 묻어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내 다른 종류의 고민들로 마음이 복잡해진 걸 보면, 성장이라는 것은 결국 고민의 종류가 바뀌는 일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맞는 고민이 있을 뿐, 성장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

올해는 커리어라는 관점에서 유난히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해였다. 작년 말 회고에는 2025년의 나는 리더로서 여러 경험을 쌓고 있을 것이라 적어 두었는데, 불과 한 달 뒤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고 사내 프론트엔드 팀은 통째로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다시 구직자가 되었다.

약 한 달 남짓한 구직 기간은, 짧지만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내 커리어를 돌아보고,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다시 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1년이라는 짧은 리더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지금은 굳이 리더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나는 직함보다 영향력을 원한다. 조직 안에서 기여하고, 팀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감각을 좋아한다. 영향력은 리더십과 닮아 있지만, 이전 회사에서는 리더와 리더십을 충분히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역할의 이름보다는 일하는 방식에 집중해, 책임을 전제로 자유롭게 일하는 에너지 넘치는 조직에 합류했다. 1년간의 짧은 리더 경험은 팀원으로서도 팀에 더 잘 기여할 수 있게 해 주는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새로운 조직에서는 이전과 전혀 다른 리듬의 일을 하고 있다. 3월에 합류해 5월쯤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는 어느덧 6개월을 넘겼다. 빠르게 만들고, 작게 배포하며 배우는 방식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 프로젝트는 낯설었다. 기존의 거대한 제품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했기에 부분 배포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사용자에게 공개된 기능은 없다.

물론 진짜는 유지보수겠지만, 내년 초에 이 제품을 실제 사용자에게 제공하게 되는 일은 분명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아 무척 기다려진다

career

주택을 구입했고, 대출을 알아보며 불안한 마음으로 잔금일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만 해도 집을 구입한다는 것은 생각도 해 보지 않았는데, 여러 이유로 내 집, 우리 집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가는 과정에서, ‘내 집’이 주는 안정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졌다. 치솟는 부동산 시장과, 약간이나마 경제에 대해 공부하면서 실물 자산과 인플레이션, 화폐 가치 하락의 논리에 설득당한 것도 한몫했다.

집을 구매하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고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계산으로 풀 수 없는 선택 앞에서, 나는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은 감각과 감정으로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이어졌고, 그 시간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남겼다. 앞으로 이런 선택을 다시 마주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번 경험이 다음번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house

올해도 하루 20페이지씩 읽는 습관은 이어졌고, 그렇게 19권의 책을 읽었다. 평소라면 쉽게 집지 않았을 두꺼운 기술서들도 몇 권 포함되어 있다. 김용찬 님의 npm deep dive는 모든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궁금해하던 영역이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올해의 책을 하나 꼽자면 존 맥스웰의 리더십 불변의 법칙이다. 리더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시기에 만난 이 책은, 막연하게 알고 있던 리더십을 또렷한 언어로 정리해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리더로서의 방향뿐 아니라, 개발자이기 이전에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무엇을 더 키워 가야 할지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book

생활

결혼 후 아내와 온전히 함께 보낸 첫 1년이었다. 즉흥적으로 하는 일들은 줄고 생활의 예측 가능성은 늘었다. 무뚝뚝한 나와 애교 많은 아내를 양가 모두 좋아해 주시는 것도 새삼 참 감사한 일이다.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느낌은 생활에 안정감을 더해 일상을 조용히 지탱해 주었다.

아내와 아침마다 한 시간 정도 운동하고 출근하는 루틴을 꽤 오래 이어오고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걸 어려워하던 아내가 어느새 1년을 채운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묘한 보람을 느꼈다.

반면, 작년에 다시 시작했던 농구는 이직 이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함께할 사람이 사라지자 코트도 멀어졌다. 가끔 지나가다 농구장을 보면 공을 던지는 자세를 상상하며 잠시 멈출 뿐이다. 내년 이사할 곳에는 혼자라도 공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무엇이든 오래 이어간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life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열댓 명 중 절반 이상이 결혼을 했고, 몇은 부모가 되었다. 아구몬을 응원하며 자란 90년대 선택받은 아이인 나는, 지금도 잉어킹을 갸라도스로 키워 체육관을 깨고, 슬램덩크를 보며 불꽃 남자를 동경하는 철없는 아이 같은데, 주변은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어 있었는지 참 신기하다.

올해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내년을 예측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힘든 시간을 지나더라도, 한줌의 여유와 위트를 잃지 않기를 바랄뿐이다.